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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라곤'에서 민주적 경영의 가치를 배우자 - 2편 - '몬드라곤'의 태동과 발전, 그리고 현재
  • 기사등록 2023-11-09 17:09:16
  • 기사수정 2023-11-10 10: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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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준 희 학생기자


 '몬드라곤'은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소도시로 2012년 인구는 21,933명이었고 현재도 비슷하다. 몬드라곤에 본부를 둔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은 2022년 기준 250개의 금융, 제조, 유통, 지식의 4개 부문의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95개는 스페인 국내의 협동조합이고, 약 130개는 일반기업 형태로 해외에 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에는 전 세계 약 8만 명이 종사하며 이 중 약 3만 5천 명은 출자금을 낸 조합원 신분이다. 2012년 기준 몬드라곤의 전체 자산은 약 53조 원, 매출은 약 22조 원의 매출 규모를 가진 거대한 글로벌 그룹형 협동조합이다. 몬드라곤 그룹의 크기를 이해하기 위하여 비슷한 규모의 한국 회사를 예로 든다면 현대자동차 그룹과 비교할 수 있다.

 

 몬드라곤은 산악지대로 가난한 소도시였다. 약 1백 년 전 바스크 지방은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국을 지지했다. 플랑코 집권 이후 바스크 지역에 대한 탄압이 자행되면서 가난과 빈곤이 극에 달했다. 몬드라곤의 창립자 호세 마리아 신부는 몬드라곤에 부임하여 청년을 위한 직업학교를 열어 기술을 가르치며 협동의 즐거움과 조직력을 배울 수 있도록 축구팀을 만들어 정기시합을 열었다. 직업학교의 첫 번째 졸업자 5명을 중심으로 난로와 라디에이터를 만드는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당시 5명의 이름을 따서 ‘울고르(ULGOR)’라고 이름을 지었고, ‘울고르’의 정관과 내규는 이후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의 모델이 된다.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은 규모가 작아서 제품을 개발할 능력과 기술적 한계가 있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외부의 과학기술과 자본에 대한 의존에서 탈피하기 위해 1973년 ‘기술연구협동조합’ 설립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공업기술협동조합인 ‘이켈란(Ikerlan)’이다.

 

 1970년대 중반, 석유파동 등으로 국제 경기가 침체하며 인플레이션이 극심했다. 이 흐름은 1980년대에도 이어졌는데, 스페인은 다른 나라보다 더 심각한 타격을 받아서 경영이 어려운 협동조합이 다수 발생했다. 이때 ‘노동인민금고’는 어려운 협동조합에 대한 이자 및 원금 상환기간 연장, 이자율 조정 등의 적극적인 역할의 수행과 동시에 협동조합에 대한 경영관리와 조언, 자금지원 등의 개입에 나섰다. 조합원 출자금 증액을 통해 자금 운용을 확대했고, 물가상승률과 회사의 현금 유동성을 연계하는 등 임금의 탄력성 부여했으며, 조합의 상호 연계망을 활용하여 이직으로 인한 실업을 최소화했다. 몬드라곤이 이 같은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본주의 기업과는 달리 협동조합의 정신을 철저히 실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조합원들의 임금 연대였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이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초반기라고 한다면, 중반기는 1992년 유럽의 경제통합이 틀을 분명하게 드러냈던 상황에 맞춰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장기적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뤄진 몬드라곤 통합 과정의 시기라 할 수 있다. 1991년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복합체가 탄생하였고, 2006년에는 통합된 그룹의 명칭을 몬드라곤(Mondragon)으로 변경했다. 당시 소속 협동조합을 금융, 제조, 유통, 연구‧교육 등 총 4개 그룹으로 통합했다. 금융 그룹에는 ‘노동인민금고’와 ‘라군아로’, 제조업 그룹에는 ‘파고르 전자’, 유통 그룹에는 ‘에로스키’ 소비자협동조합, 연구‧교육 그룹에는 기술연구소와 교육기관이 중심이 되어 통합에 이르렀다.

 

 2008년은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다. 몬드라곤 내부 제조업의 경우, 2008년부터 2009년까지 2년 연속 총매출이 급격히 감소하였고 8,000개의 일자리가 줄었다. 시중의 자금이 마르자, 노동인민금고의 고객예탁금은 감소했으며 라군아로의 사회보장기금의 증가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때 발생한 8천여 명의 일시적 휴직자는 80%의 휴직급여를 받았고, 새로운 직업교육 또한 받았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쌍용차 해고 사태와 비교해 보면, 쌍용차 해고노동자보다 거의 7배가 넘는 숫자에도 불구하고 몬드라곤은 참여와 연대의 정신으로 아픔을 나눴으며, 조합원들의 고용과 노동 복지의 안정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쌍용차는 느닷없는 해고통지 이후 어떠한 조치도 보이지 않았고, 이러한 기조가 지금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현실이다.


  참고했던 서적의 모든 내용에는 몬드라곤 그룹형 협동조합기업의 미담만 있었다. 책을 닫고 다시 생각해봤지만 이보다 민주적이고 완성도 높은 연대와 연합이 또 존재했을 지 궁금했다.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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