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정 경기중부거점장
[사이버타임즈(cybertimes)=이선정 경기중부거점장]

기대와 현실 사이, 치료의 속도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기대하는 것은 ‘빠른 변화’다.
전문가를 만나면 문제의 원인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 특히 결과와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기대가 더욱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오희정 교수가 말하는 실제 치료의 모습은 그와는 조금 다르다.
“치료는 빠르게 해결되는 과정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안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마음의 변화는 약을 복용했을 때처럼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경험과 관계, 그리고 삶의 맥락 속에서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때로는 너무 빠르게 나타나는 변화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되기도 한다.
그것이 진짜 변화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반응은 아닌지에 대해서.
치료 현장에서의 변화는 대개 아주 미세한 신호로 시작된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내담자가 조금 더 오래 머무르는 것, 한마디로 감정을 표현해 보는 것, 혹은 그림 속 색과 형태가 이전과 다르게 나타나는 것.
겉으로 보기에는 사소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중요한 변화의 시작이 담겨 있다.
변화는 ‘이해’가 시작되는 순간 나타난다
미술치료에서 변화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바로 내담자가 자신의 표현과 삶의 경험을 연결하기 시작할 때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미술 활동을 단순한 표현이나 과제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순간, 그 그림이 자신의 이야기가 되기 시작한다.
“이 그림 속 인물이 지금의 나 같아요.”
“이 색이 요즘 제 마음 같아요.”
이처럼 자신의 표현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기 시작하는 순간, 치료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다. 오 교수는 바로 그때를 ‘치료가 실제로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말한다. 이미지로 표현된 감정이 언어로 이어지는 순간, 내담자는 자신의 경험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거리감 속에서 비로소 이해가 시작된다.
변화는 그 이해의 지점에서 천천히 만들어진다.
작은 변화가 만들어내는 결정적인 전환점
치료 현장에서의 변화는 대부분 조용하게 시작된다. 그래서 때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하지만 오랜 시간 임상을 경험한 치료사는 그 작은 변화의 의미를 놓치지 않는다. 어느 날,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내담자가 그림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는 순간.
“이건 제 이야기인 것 같아요.”
혹은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던 사람이 단 한 단어로 자신의 마음을 설명해 보는 순간. 이러한 장면은 겉으로는 아주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순간은 내담자가 처음으로 자신의 경험을 스스로 인식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치료의 변화는 거대한 사건처럼 나타나기보다, 한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조금 더 정확하게 바라보게 되는 아주 조용한 순간에서 시작된다.
막히는 순간, 치료는 다시 설계된다
치료가 언제나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 오희정 교수는 먼저 ‘내담자’를 바꾸려 하기보다 ‘구조’를 다시 점검한다.
현재의 치료 목표가 이 사람에게 적절한지, 설정된 환경이 지금의 상태와 맞는지, 치료의 방향이 현실적인지에 대해 다시 질문하는 것이다.
“치료가 잘 진행되지 않는 순간은 실패라기보다, 현재의 구조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중요한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필요하다면 목표를 새롭게 설정하고, 사용하는 매체나 접근 방식을 바꾸기도 한다. 미술 활동의 방식, 대화의 언어, 관계의 거리까지 세심하게 조정해 나간다. 그 과정을 통해 치료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결국 치료는 정해진 방법을 적용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맞는 방식을 계속해서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변화의 시작은 ‘표현’에서 온다
그렇다면 내담자는 치료를 통해 무엇부터 변화하기 시작할까.
오희정 교수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은 ‘표현’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밖으로 드러내기 시작하는 순간 변화는 시작된다.
그 표현은 반드시 말일 필요는 없다.어떤 사람은 한 문장으로, 어떤 사람은 그림과 색으로, 또 어떤 사람은 몸의 움직임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중요한 것은 방식이 아니라, 그 통로가 열리는 순간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미 내면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신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변화가 나이나 상태와 크게 관계없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든, 성인이든, 혹은 다양한 인지적 특성을 가진 사람이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의 길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내담자는 자신의 삶을 조금 더 주체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치료는 ‘빠른 해결’이 아닌 ‘함께 견디는 시간’
치료사는 종종 답을 주는 사람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의 역할은 그와 조금 다르다.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한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함께 머무는 일.
쉽게 설명되지 않는 감정과 시간을 함께 견디는 일.
그래서 치료는 빠른 해결의 과정이 아니라, 이해를 향해 가는 느린 과정에 가깝다.
변화는 눈에 띄지 않는 순간에서 시작되고, 이해는 그 변화를 조금씩 이어가게 만든다.
어쩌면 치료란,
그 작고 조용한 변화의 신호를 끝까지 놓치지 않고 함께 바라봐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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