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환 경기권역장

결혼을 하고도 혼인신고를 미루는 부부가 있다.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다. 돈 때문이다. 정확히는 디딤돌 대출과 버팀목 대출 때문이다. 결혼 전에는 각자 소득으로 신청이 가능했던 정책 대출이, 혼인신고를 하는 순간 두 사람의 소득이 합산되면서 기준 초과로 탈락하거나 금리가 불리하게 바뀐다. 결혼이라는 행위가 금융 시장에서는 감점 요인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이 나라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숫자가 이 현실을 뒷받침한다. 결혼 후 1년이 넘도록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부부의 비율은 2014년 10.9%에서 2024년 19%로 10년 만에 거의 두 배가 됐다. 다섯 쌍 중 한 쌍이 혼인신고를 전략적으로 미루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법적 편법이 아니다. 생존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다. 현행 신혼부부 합산 소득 기준이 개인 기준의 두 배에 훨씬 못 미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평범한 맞벌이 부부는 결혼과 동시에 정책 금융의 사각지대로 밀려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25년 12월 국토교통부에 소득 기준 재조정을 권고한 것도 이 구조적 문제를 공식 인정한 결과다.
정부는 2006년부터 15년간 저출산 대책에 280조 원을 쏟아부었다. 2021년 한 해에만 42조 원이 넘는 예산이 집행됐다. 2026년 국가 예산 728조 원 속에서도 저출생 반등이라는 목표는 여전히 최우선 과제로 올라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금융 당국은 가계부채 억제라는 명목으로 정책 대출의 소득 기준을 촘촘하게 관리해왔다. 두 정책이 같은 정부 안에서 정반대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결혼을 장려하는 부처와 결혼에 불이익을 주는 제도가 공존하는 구조,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정책의 민낯이다.
18년 금융 현장에서 필자가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제도는 말이 아니라 숫자로 말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결혼하십시오, 아이를 낳으십시오"라고 아무리 외쳐도, 혼인신고서 한 장이 대출 자격을 박탈하는 구조라면 그 말은 공허하다. 20~30대는 정부 홍보 문구보다 통장을 본다. 결혼을 하면 집을 구하기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순간, 그 세대는 결혼 자체를 뒤로 미룬다.
혼인율이 떨어지면 출산율도 따라 내려간다. 2025년 합계출산율이 0.80명으로 소폭 반등했지만, 이것이 구조적 전환의 신호인지 일시적 숨 고르기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국회예산정책처조차 장기적으로 출산율이 0.92명 수준에서 안정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문제의 핵심은 정책 설계의 분절이다. 저출생 대책을 담당하는 부처와 주거 금융을 관리하는 부처, 그리고 가계부채를 억제하려는 금융 당국이 각자의 목표만 바라보면서 전혀 다른 방향의 신호를 시장에 내보내고 있다. 결혼을 하면 청약에서는 가점을 받지만 대출에서는 감점을 받는 나라, 아이를 낳으면 현금을 받지만 집을 구하는 대출 조건은 더 까다로워지는 나라. 이 모순이 해소되지 않는 한 어떤 출산 장려 정책도 근본적 효과를 내기 어렵다.
국가가 설계한 제도 안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혼인신고를 미루는 신혼부부를 탓할 수 없다. 주어진 규칙 안에서 최선을 고르는 것은 지극히 이성적인 행동이다. 오히려 그 규칙을 설계하고 방치한 쪽이 책임을 져야 한다. 금융 제도가 결혼에 페널티를 부과하는 한, 정부가 쏟아붓는 저출생 예산은 밑 빠진 독에 붓는 물이다. 숫자가 이미 15년치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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