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환 경기권역장

SK하이닉스가 미국 자회사 솔리다임(Solidigm)의 나스닥 상장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금융투자업계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SK하이닉스가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를 주관사로 선정해 솔리다임의 나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으며, 목표 조달 규모는 약 100억 달러(약 13조 7,000억 원), 기업가치는 최대 1,000억 달러(약 137조 원)에 달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SK하이닉스는 현재까지 "결정된 사항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심상치 않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2021년 인텔의 NAND 플래시·SSD 사업 부문을 약 9조 원에 인수해 설립한 미국 법인이다. 2026년 상반기 기준 SK하이닉스 전체 매출에서 솔리다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9.3%다. 반도체 업황이 급격히 개선되며 SK하이닉스의 실적이 사상 최대치를 갱신하는 시점에, 왜 굳이 알짜 자회사를 해외 증시에 분리 상장해야 하는가. 이것이 이번 논란의 핵심 질문이다.
지배구조를 들여다보면 문제의 윤곽이 드러난다. SK하이닉스는 SK㈜ → SK스퀘어 → SK하이닉스 → AI컴퍼니(미국 중간지주법인) → 솔리다임으로 이어지는 5단계 구조다. SK㈜에 대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직접 지분율은 17.9%에 달하는 반면, SK하이닉스에 대한 간접 지분율은 1.2%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비대칭 구조에서 솔리다임 상장이 실현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솔리다임의 상장 과정에서 신주가 발행되면 SK하이닉스가 보유한 솔리다임 지분율은 희석된다. 이는 곧 SK하이닉스 주주들이 누려야 할 솔리다임의 미래 수익 가치가 외부 주주에게 분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SK㈜를 통해 그룹 전반에 이해관계를 걸치고 있는 최 회장 측은 SK하이닉스 지분 희석에서 오는 손실보다 솔리다임 상장 차익과 그룹 전체 브랜드 가치 상승이라는 이익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솔리다임 중복상장의 본질은 이해상충"이라고 규정하며 상장 즉각 중단을 요구하는 이유다.
자금 조달의 필요성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 증권사들의 추정치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현금 보유 잔액은 올해 말 132조 원, 내년 말에는 456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잉여현금흐름(FCF) 기준으로도 올해 167조 원, 내년 326조 원 규모가 예상된다. 그룹 차원에서 10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이 반드시 외부 조달로만 해결돼야 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또한 SK텔레콤·SK이노베이션·SK㈜ 등 계열사들이 2030년까지 AI컴퍼니에 합계 11억 1,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정한 상황에서, 솔리다임 상장 기대감이 시장에 반영되기 전에 관계사들이 해당 지분을 저가에 매입할 경우 가치 이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규제 당국도 경계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솔리다임 해외 상장이 중복상장 관련 규제에 저촉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다만 금융위원회가 2024년 8월 3일부터 시행한 자회사 해외 상장 관련 규정 개선안은 국내 상장 자회사에만 적용되는 것이어서, 솔리다임과 같이 처음부터 해외 상장을 추진하는 경우에는 제도적 공백이 존재한다는 점이 지적된다. SK하이닉스와 SK스퀘어가 합산 최대 20억 원의 위약금을 감수하고서라도 해외 상장 의지를 관철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시장의 눈길이 쏠린다.
전례도 투자자들의 경계심을 자극한다. LG에너지솔루션이 2022년 LG화학에서 분리 상장할 당시, LG화학 주주들은 자회사 분리 상장에 따른 지분 희석과 주가 하락이라는 쓴맛을 보았다. 이른바 '중복상장 디스카운트'다. 솔리다임이 나스닥에 상장될 경우 SK하이닉스 주주, 특히 7.3%의 직접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 투자자와 수백만 명의 개인 투자자들이 비슷한 구조적 손실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 솔리다임의 글로벌 밸류에이션을 실현하고, AI 데이터센터 시장 확대에 따른 기업용 SSD 수요 성장을 공개 자본시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전략적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미국 현지 투자자들에게 솔리다임의 가치를 직접 소구할 수 있다는 점, 상장 이후 스톡옵션 활용을 통한 현지 인재 유치 효과 등도 긍정적 근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전략적 논리가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이해상충 구조가 해소되지 않은 채 추진되는 상장은 자본시장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 지난해 개정된 상법에 따라 이사회는 모든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고려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절차적 규정을 준수했다는 사실만으로 실질적 이익 균형의 책임까지 면제받는다고 볼 수는 없다.
SK하이닉스 이사회가 이 상장이 일반 주주에게도 공정한 선택임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솔리다임의 나스닥 입성은 반도체 강국의 자부심이 아니라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 사이의 오래된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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